2012년 개관한 영월 인도미술관은 박여송, 백좌흠 부부가 수집한 미술품을 바탕으로 개관한 곳이다. 부부는 1981년부터 인도미술에 매료되어 그곳으로 유학을 떠나 5년이 넘게 거주했고, 수차례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수집한 1천300여 점의 미술품을 수집했다고 한다. 폐교가 된 금마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미술관을 만들었으며, 디자인을 전공한 박여송 관장이 직접 리모델링을 진행했다고 한다. 교문과 여느 초등학교에 볼 수 있는 어린이 동상, 널따란 운동장은 그대로 남아있어 박물관에 들어서면 묘한 기분이 든다.
교실과 복도로 나뉜 내부 구조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으나 전시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관람을 하는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관장님께서 직접 작품 해설을 진행하는데 듣다 보면 작품에 대한 이력뿐만 아니라 작품을 관람하는 법, 해당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과 사회상까지 알 수 있어 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작품을 통해서 해당 국가와 지역의 사회상을 떠올린다는 점에서 단순히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마치 고고학처럼 해당 문화를 탐구하게 된다.
인도의 전통적인 계급제도인 카스트 제도를 미술품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위 작품이 대표적인 사례다. 위 작품은 바하르 지방의 마두바니라는 곳에서 만들어진 작품인데 마두바니 그림은 작가의 카스트에 따라 사용하는 재료가 다르다. 귀족 계급인 브라만은 화려한 색채의 재료를 하용하지만 불가촉천민은 흙과 소똥 등 거친 재료를 사용한다. 위 작품 역시 불가촉천민의 작품으로 단색적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불가촉천민은 인도 인구의 16%를 차지한다.
인도미술박물관에서는 그림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각과 공예품도 만날 수 있는데 도크라 기법으로 만든 작품도 관람할 수 있다. 도크라 기법은 기원전 2천 년 전부터 사용되었는데 왁스를 사용하여 LOST-WAX 기법이라고도 불린다. 점토와 왁스를 사용하여 형태를 잡은 다음 점토를 구우면 왁스는 녹아서 사라진다. 점토가 거푸집 형태로 남게 되고 그 공간에 금속을 부으면 왁스가 있던 자리에 금속이 자리를 잡아 작품이 완성된다. 주조법과 유사한 방식이며 도크라 기법을 사용하면 위 사진처럼 내부 공간이 빈 금속 공예품을 만들 수 있다.
여러 작품들을 감상하다보면 인도에는 참 많은 지역과 각기 다른 문화가 공존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도 미술'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떠올리는 1차원적인 연상들, 그러니까 간다라 양식, 불상, 힌두교의 상징들이 인도 미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첫인상이자 어찌 보면 선입견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것들 또한 인도 미술에서 중요한 부분이겠으나 영월 인도미술박물관에서 얻게 된 인도미술에 대한 가장 큰 인상은 다양성이라는 개념이었다. 위 사진의 가면들은 인도의 다양한 지방에서 수집한 각기 다른 형태의 전통가면들이다. 본 전시는 인도가 다양성의 나라이자 다민족 국가라는 메시지를 이처럼 효과적인 시각화를 통해 직관적으로 전달해준다.
물론 인도예술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힌두교와 불교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나타라자상은 춤추는 시바신을 표현한 힌두 조각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시바신은 창조의 신 브라흐마, 보호와 유지의 신 비슈누와 함께 힌두 3대 신으로 파괴와 재창조를 상징한다. 시바신의 춤의 에너지의 불멸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에너지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파괴가 이루어지고 다시 재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타라자는 시바신의 별칭으로 '춤의 제왕'이라는 뜻이다. 인도인들은 시바신의 춤이 멈추면 우주의 질서가 깨진다고 믿는다.
전시의 백미를 장식하는 것은 인도 바스타르 지방(현재의 차티스가르주)의 금속공예품이다. 바스타르 지방은 철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과거부터 금속공예가 유명했다고 한다. 바스타르의 금속공예는 마치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을 연상케 하는 심플하면서도 역동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이 중 한 작품은 마치 창문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데 작품 가운데 걸려있는 나뭇잎과 같은 캐릭터들이 바람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그네 형태로 디자인된 작품도 있다.)
관장님께서 작품해설 중 갑자기 전시관 내부의 불을 끄고 플래시로 해당 작품을 비추는 순간이 있는데 이때 빛으로 인해 생겨난 그림자가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빛의 위치와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공예품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동작은 마치 캐릭터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관람하던 모든 이들이 '와!'하고 탄성을 뱉었다. 관장님의 표현에 따르면 이 공예품을 통해 인도 문화의 창의성과 천진난만함을 함께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해당 작품은 오는 25~26일 양일간 남이섬에서 개최되는 ‘나마스테, 희망을 물들이다’ 2021 사랑-나미나라 인도문화축제'에 전시된다.
박물관에서는 그림과 조각 외에도 '사리', '숄'과 같은 수공예 직물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사막지역에서는 농사가 어려워 수공예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넓고도 복잡한 인도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안의 다양한 지역과 기후, 문화가 만들어낸 작품들과 친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영월 인도미술박물관은 예술을 통해 인도를 만나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영월 인도미술박물관은 제천과 영월을 접경지역에 있어 제천에서 영월로 넘어올 때 방문하기 좋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송학주천로 899-6) 관람료는 5천원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인도 전통차와 공예품을 판매 중이며 인문학 클래스와 요가 클래스도 진행한다고 한다. 아래 연합뉴스 한미희 기자의 기사가 알차다. 일독을 권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1807171387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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