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 선생은 1786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인 월성위 김한신의 증손이자 이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도 태어났다. 이후 백부 김노영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후에 출사하여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다. 당쟁으로 인하여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0여년간 유배생활을 보내기도 하였으며, 말년에는 생부 김노경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71세를 일기로 작고하였다. (1856년, 철종 7년)
○ 추사의 대표작품들
(1) 세한도 :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하는 동안에 제자인 우선 이상적에게 보낸 그림으로 추사 김정희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힌다.
(2) 죽로지실 : 죽로(대나무로 감싸서 만든 화로)가 있는 방이란 뜻이다.
(3) 화암사 무량수각 : 예산 화암사에 걸려있는 현판으로 추사가제주에서 귀양살이 할 때 1846년 추사가문의 원찰인ㄴ 화암사 중창때 예서체로 써 보낸 것이다. 대둔사의 현판보다 기름기가 빠지고 소박한 모습으로 획이 가늘면서도 힘과 멋이 함께 들어 있어 조형미가 물씬 풍기며 귀양 생활로 변화된 추사의 글씨와 성정을 엿볼 수 있다.
○ 추사 김정희 고택과 예산 추사기념관
추사 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건립한 53칸 규모의 양반 대갓집으로 추사가 태어나 성장한 곳이다.
(1) 추사 김정희의 묘 : 초배인 한산이씨, 계배인 예안이씨가 합장되어 있다.
(2) 월성위 김한신의 묘 :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이다. 비문에는 영조의 어필이 새겨져 있다.
(3) 화순옹주 홍문 : 정려문은 추사선생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차녀)의 정절을 기리고자 정조가 명정(命旌)한 열녀문이다. 화순옹주는 부군 월성위 김한신이 39세의 나이로 작고하자 식음을 전폐하고 부왕 영조의 만류에도 부군을 따르고 말았다. 화순옹주는 조선왕조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4) 예산 추사기념관 : 2008년 추사 김정희 선생의 드높은 서예정신과 업적을 조명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5) 화암사 :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삼국시대의 고찰로 전해진다. 김한신이 영조의 부마가 되었을 때 별사전으로 분그보딘 일대의 전토에 포함되어 그 일문에 세습되었다. 1752년 월성위가 중건하였으나 대웅전은 소실되고 요사채만 남아있다.
○ 관람후기
공간이 넓고 쾌적하여 한바퀴 둘러보기 좋다. 고택을 그대로 보존하고 기념관은 멀지 않은 곳에 따로 만들어 두어 고택을 거닐 때는 정취에 젖고, 기념관에서는 유익하게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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