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포스팅은 삼프로TV 2022년 1월 3일 방송을 참고하였습니다.
* 본문 전개는 방송을 따르되 일부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순서를 조정하였습니다.
* 본문 내용 중 '▷' 표시는 방송 내용 외 포스팅을 하면서 추가한 내용입니다.
이란 소식
이란의 새해는 춘분(2022년 3월 21일)이다. 이란은 새해가 되면 가구를 모두 바꾼다.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의식 같은 것이다. 백색가전도 바꾸고 쇼핑이 가장 활발해지는 시기다. 요즘은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분위기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
이란 경제제재가 계속 진행되면서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이란의 시선도 곱지 않다. 오바마 정부가 제재를 시작한 이래로 우리나라는 이란산 석유 수입을 순차적으로 줄여야 했고 6개월마다 미국 측이 이를 확인했다. 지금은 더 이상 이란산 석유를 수입하지 않는다. 문제는 석유 대금이다. 미국이 이란산 석유 수입금지와 함께 달러 거래를 막아버렸다. 결국 이란이 한국의 우리은행에 계좌를 만들어 석유대금을 원화를 보유하는 방식으로 대금을 우회 지급했다. 한국 기업이 이란에 수출을 하는 경우 해당 계좌에서 원화를 출금해 이를 수출 대금을 받기도 했다.
문제는 해당 계좌마저 동결되고 나서부터는 이란 측에서 조 단위의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우리은행에 지급을 명령해도 우리은행 측에서는 듣지 않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가 미국의 금융제재를 받으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입장에서는 애가 타고 우리 입장도 불편한 어려운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와서도 제재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 이후 對이란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2019년 4월부터는 이란과의 교역에서 원화결제까지 금지되었다. 한국 기업은 이란으로부터 수출대금을 받지 못했고, 2021년 7월에 와서야 바이든 정부를 설득해 미수금에 한정하여 회수가 이루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파기한 이란 핵 합의(Joint Comprehesive Plan Of Action, 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복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2015년 7월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의 핵 합의를 타결하면서 이란 시장이 개방되었다. 한국 기업들도 진출하기 시작했고 2016년 5월엔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해 세일즈 외교를 펼치지도 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5월 이란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다시 철수했다. 현재 한국 기업의 빈자리를 중국 기업들이 채우고 있다. (추가 끝)
아프가니스탄 소식
탈레반이 집권 중이나 얼마나 오래갈 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현재 중국과 관계가 좋다. 탈레반은 탈레반 내부의 위구르인들을 모두 방출했다고 중국에 밝혔다. IS는 이런 탈레반을 창녀, 위선자라 비판했다. 돈 때문에 같은 무슬림 형제인 위구르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IS의 입장에서 무슬림들이 고통받는 곳은 크게 3곳이다. 팔레스타인, 카슈미르(인도령이지만 대다수가 무슬림 인구), 위구르.
탈레반의 경우 팔레스타인과 카슈미르에 대해서는 IS와 입장을 같이하지만 위구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IS-K(IS 호라산)가 2021년 10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를 일으켰는데 이 테러의 주범이 위구르 출신이라고 밝혔다. 중국과 탈레반에 대한 무언의 시위를 저지른 것이다. 탈레반이 중국과 관계에 신경 쓰는 이유는 오직 돈이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중에는 탈레반과 경제 협력을 할만한 곳이 없다. 아프가니스탄은 현재 마약, 테러, 난민 3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산 양귀비가 전 세계 시장의 80%를 자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원료만 팔았는데 지금은 마약을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다.
현재 탈레반과 가장 사이가 안 좋은국가는 타지키스탄이다. 이들이 타지크족 위주로 구성된 아프가니스탄 반군(反탈레반)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내 타지키스탄 반군(이슬람 극단주의, 반 타키지스탄 정부)을 타지키스탄으로 돌려보내서 공격을 하겠다며 타지키스탄 정부를 압박했다.
파키스탄 같은 경우 탈레반을 도와주려고 한다. 굉장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역사적으로도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파키스탄 경제가 여유롭지는 않아 탈레반을 크게 지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파키스탄은 중국과도 사이가 좋다.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과다르 항구에도 투자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안 쪽은 미국의 영향력이 큰데, 과다르항은 페르시안만 바깥쪽이라 중국이 과다르항을 손에 넣을 경우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페르시아만에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위구르와 탈레반을 잘 통제할 필요가 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위구르 지역이며,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직접적인 사업 대상지는 아니나 바로 인근에 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성공에 필수적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위치가 내륙 한 가운데라 린치핀 같은 역할을 한다. 지금도 투르크메니스탄과 인도를 잇는 송유관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과거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벌어진 The Great Game도 아프가니스탄이 주무대였다. 아프가니스탄 자체가 큰 힘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주변을 흔들 수 있다. 실제로 중동이라 부르기도 애매하고, 중앙아시아도 아니며, 서아시아도 아니다. 그러나 이 3개 구역에 모두 포함될 수 있다. 즉 세 구역의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이 흔들리면 6개 접경국이 다 흔들린다.
러시아도 아프가니스탄과 이해관계가 있다. 아프가니스탄 접경국인 타지키스탄에 러시아의 가장 큰 해외 군사기지가 있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중시했다. 러시아내 극단/분리주의자(체첸 등)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 힘을 기른 뒤 다시 러시아를 공격할 수도 있다. 즉, 러시아의 입장에선 아프가니스탄이 벌집이 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첫 번째 목표는 다시는 미국을 이 지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과거 미군이 아프간에 주둔했을 때는 우즈베키스탄(역시 아프가니스탄의 접경국)이 물류기지로 역할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두 번째 목표는 관리다. 큰 문제만 일으키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상하이 협력기구를 활용하고 있다. 기구 자체가 중앙아시아 통제 목적으로 설립된 면이 있다.
▷ 아프가니스탄은 현재 상하이 협력기구의 참관국 자격으로 있으며 2021년 9월에는 이란이 정식 가입국으로 승인되었다. (추가끝)
현재 중동의 이슈
이슈 1.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이 될 것인가? (마약, 테러, 난민)
이슈 2. (아프가니스탄에 가려진) 이란 핵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우선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대한 전망은 비관적이다. 국제사회가 경제적 지원을 해야 탈레반 정부가 안정될 것이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요구는 탈레반이 개혁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거국 내각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인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탈레반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미국도 주변국들이 아프간을 도와주길 바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아프가니스탄 통합정부(거국 내각)가 구성되지 않으면 국제사회가 (각국의 내부 여론을 감안하더라도) 도움을 주기 어렵다. 따라서 서방세계의 지원은 사실상 어려울 것 같다. 탈레반도 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중국을 유일한 희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러시아는 탈레반에 계속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다. 러시아는 타지키스탄과 공동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최근 판지시르를 공격하던 탈레반이 반군의 공격에 궤멸당했는데 러시아와 타지키스탄이 반군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철수한 미국은 카타르를 통해서 아프가니스탄의 정세를 지속 관찰하고 있다. 카타르는 중동 세계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중동 관련 회담은 대부분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다. 도하의 치안이 안정적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탈레반도 카타르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카타르는 중동의 스위스 같은 존재다. 카타르 정부가 후원하는 알자지라 방송은 카타르 정부를 제외한 모든 아랍 정부를 비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사우디와 UAE는 이에 반발해 카타르와 단교했고, 국교정상화의 조건으로 알자지라 방송의 폐쇄를 내세웠다. 미국 입장에서는 더 큰 적인 이란에 대응하기 위해 카타르를 포함해 중동 국가들이 긴밀히 협력하기를 바라고 있다.
다시 아프간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파키스탄이 버티고 있는 동안은 탈레반 정부가 유지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반군들이 힘을 얻어 탈레반 정권을 엎어버리는 것인데 지금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반군들의 세력이 너무 약하다. 아프가니스탄은 14개 민족이 살기 때문에 중앙집권 국가를 건설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수 민족은 파슈툰(탈레반 주력), 타지크, 우즈벡, 하자라족 4개). 한 번도 나라를 제대로 통합해본 적이 없다.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에도 각 민족이 개별적으로 소련과 싸운 것이지 한 번도 통합해서 싸운 적이 없다. 개전 초기 미국은 파키스탄을 통해서 이들을 지원했는데 나중에는 결국 민족별로 지원할 정도였다. 또 통합된 힘을 가지지 못하여 소련이 아프간에서 1989년에 철수한 이후에도 친소 정권은 1992년까지 집권했다. 친소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민족끼리 분열해서 싸웠다. 각 민족의 사이는 무늬만 부부이고 이혼하기는 싫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간 내의 타지크족과 우즈벡족이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과 통합될 가능성도 없다. 해당 국가들이 이들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판지시르 저항군 대장인 마수드는 독립 연방국 가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판지시르만 정복하면 아프간을 통일한다고 생각하는 탈레반은 당연히 이 제안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은 철군한 이후 속 시원한 입장이다. 탈레반이 더 이상 미국과 나토 안보에 위협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신장위구르와 미국
중국은 오래전부터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 이하 에팀)을 테러 단체로 지정해야 한다고 미국에 말했다. 미국은 이에 동의하지 않다가 갑자기 2002년 에팀을 테러단체로 지정한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해서 밑 작업을 한 것이다. 이라크를 순조롭게 침공하기 위해서는 유엔 안보리에서 반대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중국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고, 들어준 정도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다.
당시 에팀은 규모가 크지도 않았고 파키스탄에서 소규모로 운영되던 조직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테러 단체 지정 이후 중국은 마음대로 신장위구르에 압력을 가한다. 조금이라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 에팀 테러분자로 몰아 강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사실 이런 행태는 9.11 이후 세계 각국에서 벌어졌다. 여러 나라가 자국 내 무슬림들이 반정부 의견을 내비치면 모두 테러 분자로 몰아가서 소탕했다. 오사마 빈라덴이 만든 최악의 결과다. 미국은 불현듯 10년 뒤인 2013년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10년 간 에팀이 실재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라는 말과 함께 에팀을 테러 단체 명단에서 삭제한다. 국제 사회는 정의를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국익에 따라 돌아간다는 대표적인 예다.
신장위구르의 입장에선 테러와 관련 없이 정당하게 민주주의와 인권을 호소하는 것인데 외부에서 자꾸 테러단체와 연관을 지어가니 괴로울 따름이다. 중국 정부는 신장 위구르인들을 완전한 중국인으로 만들겠다며 '재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엄타정책(엄하게 때린다)을 강화하여 신장위구르에 대한 통제 수위를 높였다. 직업교육훈련센터라는 기관을 설립해 위구르인들을 재교육하고 있다. 위구르인의 종교색과 위구르색을 빼, 완전한 중국인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 기관을 교육기관이 아닌 수용소라고 본다.
위구르에 대한 중국의 통제는 굉장히 강한데, 위구르인이 등록된 모스크가 아닌 다른 지역의 모스크에 예배를 하러 가면 벌금을 내야 한다. 약 두 달치 봉급에 해당하는 액수다. 마치 군부대의 위수지역을 연상시킨다.
(1/13 박현도 교수 추가 설명) 산아제한도 강력해 공산당의 허가 없이는 임신을 하지 못하고 낙태나 불임수술에 대한 증언도 많다. (끝)
사실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 번도 위구르를 제대로 통합하지 못했다. 마오쩌둥의 아내인 장칭은 위구르인들을 '침략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국인이 아니라 외부인이라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중국이 위구르를 장악하게 된 과정에는 영국의 도움도 있었다. 당시 그레이트 게임 중이던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청나라의 위구르 침략을 지원했다.
(1/13 박현도 교수 추가 설명) 청나라가 신장위구르를 정복한 것은 건륭제 때다. 그러나 위구르를 그 이후에도 제대로 통제하지는 못했다. 재정복 사업을 진행한 것은 1876년이다. 이때 홍콩 상하이 은행이 청나라에 돈을 빌려줬다. 결국 1878년에 ~1879년에 위구르를 점령하지만 러시아가 반발해 분쟁을 겪기도 했다. 이때 영국이 중재해 위구르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끝)
대부분의 무슬림 국가들은 여기에 침묵하고 있다.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이 최근에 와서야 위구르인들의 삶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 정도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가 과거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절의 영광을 되찾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투르크어권 나라들의 협의체인 '투르크어 평의회'가 2009년 발족되었는데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것을 '투르크어권 국가 기구'로 확대·격상했다. 중국은 해당 기구를 주시하고 있다. 터키가 이렇게 최근 위구르와 관련된 행보를 보이는 것은 대미관계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중국을 괴롭히면서 미국과 관계 회복 & 중앙아시아에서의 세력 확대를 기대하는 것 같다.
중동 스스로 긋지 못한 국경
중동에는 해당 국가가 스스로 그은 국경이 없다. 모두 영국과 프랑스가 그은 것이다. 심지어 요르단은 사우디 접경인 동쪽 국경에 움푹 파인 곳도 있다. 이 국경은 1921년 처칠이 그었다. 그는 당시 이집트 카이로에서 식민 장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혹자들은 처칠이 술을 먹고 국경을 긋다 딸꾹질을 해 국경선이 꺾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영어로는 이 국경을 윈스턴즈 히컵(처칠의 딸꾹질)이라고 부른다.
이라크의 국경은 는 거트루드 벨이라는 여성이 그렸다.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에도 잠깐 언급된다. 지리 전문가로 뛰어난 인재였고 영국 외교부에서 그녀를 스카우트했고 지금 이라크 국경은 그녀가 그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라크, 요르단을 비롯해 중동의 많은 지역이 과거 모두 오스만 제국의 땅이었다. 다른 언어를 쓰면서도 오스만 제국의 통치 아래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다. 언어는 달랐으나 모두가 무슬림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고 싶었고 중동에 민족주의를 부추긴다. 언어가 다르므로 오스만 투르크와는 다른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불어넣었다. 아랍 민족주의를 부추긴 뒤에 영국의 입맛에 맞게 국경선을 그었다.
중동 국가들이 화해할 가능성(석유와 이란)
1967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제3차 중동전쟁, 6일 전쟁)에서 대패한 이집트는 보복을 결심하고 1973년 다시 전쟁(제4차 중동전쟁)을 일으킨다. 이집트는 전쟁 발발 전 사우디에 협조를 구하고 사우디는 이에 응한다. 이집트의 기습으로 전쟁이 시작되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사우디는 석유 금수조치를 내린다. (제1차 석유파동)
이후 미국은 중동이 유가를 올리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유가가 오르지 못하니 석유 의존도가 높은 이란의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당시만 해도 사우디와 이란은 미국 중동정책의 핵심 축이었다. 소련을 막는 두 개의 기둥, Twin pillars라고 불렸다. 당시 이란은 미국과 우호적이었고 미국의 의도대로 세속화, 근대화 사업을 열심히 추진 중이었다. 사우디와의 사이도 지금처럼 나쁘지 않았다. (좋지도 않았지만, 특별히 나쁘지도 않았던 수준)
1976년 12월 OPEC 회의가 열렸고, 감산을 통한 유가상승을 기대하던 이란은 절망한다. 사우디가 증산을 선언해버린 것이다. 회담지였던 카타르 도하를 떠나면서 야마니 당시 사우디 석유장관이 "미국이 우리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사우디와 미국이 사전에 협의했다는 인상을 진하게 풍긴다. 한 달 뒤인 1977년 1월, 이란의 샤(왕)는 장관을 불러 국고가 비었음을 통보한다. 이란의 종말이 다가온 것이다. 이때부터 팔레비 왕조는 흔들리고 이란의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1978년 이란 석유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제2차 석유파동이 일어난다. 1979년, 이란의 친미정권은 무너지고 반미정권 들어온다. 미국의 헨리 키신저는 "우리가 터키를 놓친 마당에 이란까지 놓치면 안 좋을 텐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미국이 이란을 죽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샤가 귀찮아진 것 같다. 그리고 뒤이어 벌어질 사태으의 심각성을 예상치 못한 것 같다.
샤는 결국 해외로 망명하게 되고 이란 여론은 샤의 미국 망명을 강력히 반대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터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샤는 결국 이집트를 거쳐 멕시코로 넘어간다. 지미 카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공화당 세력은 샤를 미국으로 망명시킨다. 이 망명에는 음모론이 있는데 공화당과 체이슨 맨해튼 은행이 공모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체이슨 맨해튼 은행에서 샤에게 빌려준 돈이 있었는데 이를 동결시키기 위해 고의로 샤를 입국시켜 이란 내의 분란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란 내 반미 정서가 폭발하게 되고 미 대사관 인질 사태가 발생한다. 이란은 444일 동안 미 대사관 인질들을 억류하다가 카터 정부가 무너지고 레이건이 당선된 후에야 풀어주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이란과 미국의 악연이 계속되고 있다.
이후 미국은 이란을 막기 위해서 중동에 친미국가들을 지원하고 관리했다. 사실 안보보다 석유가 더 큰 목적이긴 했다. 미국 4성 장군 출신인 웨슬리 클라크는 "석유 없는 중동은 아프리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타국이 내정에 간섭하는 경우는 드물다. 석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는 1980년 연두교서를 통해 당시 페르시아만에 대한 외부세력의 장악 시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카터 독트린) 이 기조가 최근까지도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셰일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점점 중동에서 신경을 끄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러시아를 제치고 미국이 세계 최대의 가스 생산국에 올랐고, 2018년에는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연두교서에서 "미국에는 100년 동안 쓸 셰일이 있다."라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 직전 2011년 10월 ~ 11월에는 당시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아시아 회귀 정책을 발표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간 중동 여러 국가는 미국에 안보를 의존해왔다. 그러나 미군이 중동에서 철군함에 따라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놓치지 않고 주선자가 되었다.
그동안 미국은 이란으로부터 중동국가들을 지켜준 것이다. 이란은 인구만 8천만 명에 100% 자국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사우디 군은 대부분 파키스탄 용병이고 인구도 2천만 명에 불과하다. 이것은 비단 사우디만의 문제가 아니다. GCC 6개국을 모두 합할 경우 경제규모는 한국과 비슷하고 인구도 4천만 명 수준이다. 그런데 이들 나라 모두 제대로 된 군대가 없다시피 하다. UAE가 뛰어난 공군을 보유 중이지만 어디까지나 공군에 한정해서다. 이란은 중동에서 아랍국가들의 주적이자 이스라엘의 주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아랍과 이스라엘이 손잡지 못한 것은 팔레스타인 문제 때문이었다. 2002년 사우디가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워줄 경우 바로 수교를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이스라엘이 거부했다. 최근에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바레인, 수단, 모로코가 이스라엘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여전히 미수교국이다. 국민 여론을 의식한 것 같다. 만약 국민감정이 격해지면 사우디 왕정의 안위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티 내지 않고 조용히 협력하는 길을 택한 것 같다.
UAE는 이란과 직접적으로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다. 분쟁 대상지인 3개 섬은 현재 이란이 점유 중이다. 프랑스 해군이 UAE 주둔 중이다. 프랑스 본국과 과거 식민지를 제외한 유일한 프랑스 해군기지가 UAE에 있다. UAE는 공군력 강화를 위해 미국으로부터 F35 전투기를 구매할 예정이었으나 이스라엘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러자 그 틈을 프랑스가 파고들어 라팔 전투기를 대거 팔아치웠다. 작년에 있었던 잠수함 사태를 제대로 복수한 것이다.
▷ 2021년, 호주는 프랑스와 맺은 잠수함 공급계약을 위약금까지 지불하며 파기했다. 미국이 호주에 핵잠수함을 판매하기로 결정한 것이 주원인이었다. 프랑스는 강력히 반발했으나 계약은 결국 파기되었다. (추가 끝)
미국은 중동에서 최대한 빨리 떠나려 할 것이다. 오바마 정부도 이란 핵협상을 체결하고 철군하려 했으나 IS 때문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바이드 정부 역시 최대한 빨리 핵협상을 마무리하고 중동에서 손을 떼려 할 것이다. 안보가 불안해진 사우디와 UAE는 중국과 손을 잡으려 하다가 최근 미국의 감시망에 포착되었다. 사우디 입장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란은 과거부터 전쟁이 개시되면 사우디를 석기시대로 돌리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이란은 지상군뿐만 아니라 탄도 미사일 역시 많이 보유하고 있다. 사우디의 유전지역을 모두 초토화시킬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미국은 얼마 전 사우디에 배치했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철수시켜 버렸다.
지금 중동은 미국이 빠진 공간에서 각개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란 핵협상을 마무리 짓고 하루빨리 중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다. 오바마는 핵협상 당시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20%로 제한하고 그 기간을 20년으로 정했다. 핵협상 당시 이란은 6개월이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평가받았다. 오바마 핵협상의 핵심은 20년간 그것을 제한하고, 20년 후에 만약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더라도 그때는 시일이 6개월보다 더 걸릴 것이므로 충분히 저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협상 당시 미국은 사우디에 이러한 협상 내용을 밝히지 않았고 당연히 사우디는 크게 반발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자 사우디는 트럼프를 구워삶아 이란 핵협상을 파기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나 협상 파기는 최악의 수를 둔 것이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니 다시는 예전과 같은 조건으로 합의할 수 없을 것이다. 핵 협상 이후 이란은 협상 내용을 잘 준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지금은 우라늄 농축을 60% 수준까지 상향한 상태다. 거기다 재협상을 위해서는 모든 제재를 해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기다 사우디는 재협상을 하게 되면 핵개발을 포함한 탄도미사일까지 통제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희망고문만 이어지고 협상이 진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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