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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로TV] 인남식 교수의 중동학개론 8화 (사우디, 이란, 미국)

Varsika 2022. 5. 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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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삼프로TV 5월 8일 방송(본문 하단 링크)을 참고하였습니다.
* 본문 전개는 방송을 따르되 일부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순서를 조정하였습니다.
* 본문 내용 중 '▷' 표시는 방송 내용 외 포스팅을 하면서 추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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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와 이란의 헤게모니 싸움

 

사우디와 이란의 경쟁은 다른 중동 국가들이 분쟁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예맨, 이라크, 시리아 등은 내전을 겪고 있고 이는 해당 국가의 국내 정치적 요인이 크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우 영토분쟁이다. 그러나 사우디와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의 헤게모니 경쟁 성격이 있다. 

 

이 둘은 차이점도 많다.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들이고, 사우디는 부족 단위 유목민들의 후예다. 제국을 경영해본  이들과 유목민들간의 통일을 거쳐 단일 국가를 건국한 이들이기에 세계관과 국체가 아주 다르다. 민족도 이란은 아리안 민족이고, 사우디는 아랍계 셈족이다. 종교적으로도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 사우디는 수니파의 종주국을 자처하고 있다. 정치체계도 다르다. 이란은 공화정(이슬람 공화국)이며 사우디는 절대 왕정이다. 대외적으로 본다면 이란은 반미, 사우디는 친미 국가의 성향이 있다. 

 

사우디는 그들의 통치이념을 외부로 확장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반면 이란은 그들의 혁명 사상을 외부에 전파하는 것이 국가의 최고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란의 혁명 정신에 따르면 (사우디처럼) 특정 군주가 이슬람을 대표하면서 한 국가 내에서 이슬람의 가치를 완전히 구현할 수 없다. 이란의 혁명 사상은 다룰 이슬람(Darul Islam, 평화의 세계)을 국경 너머로 확산하는 것이다. 과거 마르크스의 공산당 이념처럼 전 세계에 이슬람을 전파하는 개념이다. 아직 이슬람화 되지 않은 곳은 다룰 하르브(Darul Harb, 전쟁의 세계)로 묘사한다. 이슬람 역시 기독교와 같이 선교가 중요하다. 

 

드론 폭격으로 사망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은 팔레비 국왕을 축출하고  이슬람 혁명을 이루어 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혁명을 국경 밖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사명이자 국시이다. 이란 혁명 수비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내부의 혁명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해외에 이슬람을 수출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슬람을 마치 도미노처럼 모든 나라에 퍼트리고자 한다. 과거 솔레이만이 지휘했던 쿠즈(혹은 쿠드스) 부대는 이란 혁명 수비대 내부 조직으로 해외 혁명 수출을 진작시키는 부대이다. 이들은 중동 각국을 돌며 이슬람 혁명을 추진하는 민병대를 지원한다. 명칭은 수비대이지만 혁명 확장을 위한 특수부대라고 볼 수 있다.

 

사우디가 이란을 불편해하는 가장 큰 이유가 혁명의 수출이다. 이란은 1979년 혁명을 통해 왕정을 없애 버렸다. 걸프만에는 총 6개의 왕국이 있다. 이란은 혁명의 시발점을 왕정의 철폐로 보고 있다. IS 또한 왕정을 뒤엎고 통일된 하나의 이슬람 국가를 만들겠다고 선포했었다. IS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의 국경은 서구 열강이 그어놓은 의미 없는 선이며, 이 국경들을 모두 해체해 하나의 이슬람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물론 IS는 수니파 세력이었고 이란은 시아파 세력이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확장성의 측면에서는 동일한 면이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

 

이슬람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칼리프의 시대였다. 계승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이 서로 추대하는 방식으로 대표를 선출했다. 따라서 혈연 승계는 이슬람의 전통과는 맞지 않는 방식이다. 가톨릭에 비유하자면 마치 교황이 세습되는 것과 같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승계 논란은 수니와 시아가 분파되었을 때 가장 중요한 논쟁이었다. 수니파는 혈연 승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도자들 간의 합의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기로 했다. 반면 시아파는 무하마드의 조카이자 사위인 알리가 지도자의 자리를 승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혈통 속에 알라의 DNA가 숨어있다고 본 것이다. 이 부분만 보면 현재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수니파 국가(사우디 아라비아 등)와 공화정을 추구하는 시아파 국가(이란)가 정반대의 체제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이란에서 검은색 터번을 쓴 사람들은 모하마드의 직계(순혈주의자)이며 흰색은 순혈주의자가 아닌 신도들이다. 순혈주의가 존재하는 이란이 혁명을 수출하기를 원하는 것 또한 아이러니가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사우드 가문

 

사우디는 절대 왕정국가이다.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한 1대 국왕 이븐 사우드에게는 22명의 아내가 있었고, 여기서 왕위 계승이 가능한 적자가 45~46명 태어난다. 사우디 왕실은 왕자와 공주를 합쳐 4~5천 명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일본은 사우디 왕자가 7,700명에 달하며 공주까지 합할 경우 1만 5천 명에 이른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영국과 일본은 사우디 왕실에 관심이 많은 국가 중 하나다. 이들 가운데서는 완전히 세속화된 사람도 있고,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따라서 사우디 왕실은 내부적으로 불안한 요소가 있다. 내부에서 어떤 비판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우드 가문은 본래 네지드(Najd 혹은 Nejd)라고 불리는 내륙지방의 가문이었다. 메카에서 종교개혁을 추진하다 쫓겨나 와합(와하비즘의 창시자)과 사우드 가문이 연합하면서 폭발력(사우드 가문의 통치력 & 와합의 보수적인 이슬람 교리)을 갖게 된다. 이후 3차에 걸친 정복전쟁 끝에 이븐 사우드는 1932년,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한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메카와 메디나를 다스렸던 가문은 본래 하심 가문(영국과 협력한 이력이 있음)이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명문 가문으로 현재는 요르단을 통치하고 있다. 사우드 가문의 영향력에 의해 요르단으로 쫓겨난 것이다. 요르단의 정식 국호는 The Hashemite Kingdom of Jordan이다.

 

 

 

사우디 국기에도 신앙고백이 들어 있는데 이 2개의 문장은 유일신(알라)과 무하마드의 지위를 인정하는 선언이며 이를 칼로써 지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초록색 바탕은 낙원(선교를 통해 이슬람을 전 세계에 확산한다)을 상징한다. 

 

 

사우디 왕실과 빈살만 왕세자

 

이븐 사우드 국왕은 유언을 남길 때 생모가 누군지와 관계없이 모든 왕자들이 즉위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손자도 왕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런데 현재 왕세자인 빈살만이 이 전통을 깬 것이다. 본래는 살 만왕의 동생인 무크린이 왕세제였다. 사우디 국민 입장에서는 노쇠한 왕정이라는 인식이 있어 젊은 군주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카타르의 경우 80년생인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가 2013년부터 나라를 통치하고 있다.)

 

 

이븐 사우드 국왕은 10번째 부인인 하사 빈트를 총애했다. 자연스레 하사 빈트 사이에서 태어난 7명의 왕자를 총애했고, 이들은 20대부터 요직을 차지했다. 5대 국왕 파흐드가 그중 한 명이다. 수다이리 세븐이 아니면서 왕위를 계승했던 6대 국왕 압둘라는 조심스러운 왕자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0번째 왕비의 일곱 왕자는 '수다이리(Sudayri) 세븐'이라 불리며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빈살만 왕세자의 아버지 살만 국왕도 역시 수다이리 세븐 중 하나이다. 하사 빈트 아메드 알 수다이리는  13세일 때 38세인 국왕의 8번째 부인으로 처음 왕실에 들어왔다. 오래지 않아 이혼을 하고 수다이리는 국왕의 이복형제와 재혼했다 그러나 후에 다시 이혼을 하고 이븐 사우드 국왕과 수다이리와 재혼한다. 10번째 부인으로 다시 왕비가 된 것이다. 수다이리는 1969년에 사망했다. (추가 끝)

 

파흐드 국왕이 뇌졸중(stroke)으로 쓰러진 다음 압둘라 국왕이 대리 체제로 나라를 경영한다. 압둘라는 법을 바꾸어 왕자 세대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이후 왕세제였던 술탄과 나예프가 사망하고 7대 국왕 살만이 즉위하게 되었다. 살만 국왕은 2015년 4월, 형님(나예프)의 아들인 무하마드 빈 나예프를 왕세자로 책봉하였으나, 2년 뒤 2017년 6월 자신의 아들인 빈살만을 왕세자로 책봉하였다. (빈나예프 왕세자 폐위)

 

사우디 왕세자 빈살만

 

지금은 빈살만이 사우디의 실세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왕세자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삼촌인 술탄이나 나예프가 자신의 아버지인 살만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다이리 혈연 중 빈살만은 막내 수준이다.  빈살만의 입장에서 지금 왕실에는 무수히 많은 수양대군이 있는 것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책봉 직후인  2017년 11월, 사우디의 부호와 왕실 인사 수십 명을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에 감금한 뒤 부패 혐의로 이들을 조사했다. 후에 거액의 '애국 보석금'과 충성 서약을 한 이들만이 풀려날 수 있었다.

 

빈살만은 정치적 위협을 타개하기 위해 왕국인 절반인 여성, 그리고 수구 세력의 반대편인 젊은 세대와 손을 잡겠다고 나서고 있다. 와하비즘으로 똘똘 뭉쳐있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개혁군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미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도 돈독해진다.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2018)

 

자말 카슈끄지는 사우디의 반정부 성향을 지닌 언론인이다. 왕정 체제를 비판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빈살만을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썼다. 카슈끄지는 터키에서 체류 중 주이스탄불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암살당했다. 바이든은 이 문제에 대해 강력히 문제제기하였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근거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데(신장 위구르, 홍콩), 미래에 군주가 될 왕세자가 언론인을 타국에 위치한 총영사관에서 암살한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현재도 빈살만 왕세자를 카운터 파트로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사우디와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국왕인 살만과 대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사우디는 미국에 각을 세우게 되었다. 고유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우디의 증산을 요청하는 미국의 연락을 외면하고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는 설이 돌고 있다. 오히려 러시아와 친밀하게 공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살만 국왕 입장에서도 이미 빈살만에게 많은 권한이 넘어갔기 때문에 그를 제재할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왕실 전체가 들고일어나 빈살만 왕세자와 살만 국왕을 위협할 수도 있다. 끝까지 빈살만을 지지해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오랜 동맹에서 소원해진 미국과 사우디

 

얄타 회담 후 3일 뒤인 1945년 2월 14일, 수에즈 운하에 정박한 USS 퀸시 군함에서 루즈벨트 대통령과 이븐 사우드 국왕이 만난다. 루즈벨트는 사우디에 안보(왕실의 안정) 지원을 약속하고 사우디는 반대급부로 안정적인 석유공급을 약속했다. 당시 루즈벨트는 사우디로부터 국경 밖으로 이슬람을 확산시키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메카와 메디나를 가진 사우디가 지금의 이란처럼 이슬람 혁명 수출에 나선다면 중동은 이미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당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국익을 위해서 끝까지 동분서주한 것이다. 그리고 회담 2달 뒤 사망한다. 

 

이븐 사우드 국왕과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으로부터 자유세계의 리더 자리를 갑작스레 전달받은 미국은 석유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은 영국으로부터 전승된 지혜였다. 이 때문에 당시 신생국인 사우디로 달려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전통적인 석유 생산국은 이란과 이라크 정도였다.  이 역사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냉전 반세기 동안 미국은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MBS(무하마드 빈살만)와 바이든 시대에 와서는 껄끄러운 관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우디 왕실은 석유시대의 종말, 이란의 부상(반왕정 혁명 세력), 국내 반왕정 인사들이 암약 등, 3중 위기를 겪고 있다.

 

▷ 1974년 미국 닉슨 대통령과 사우디 파이살 국왕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OPEC이 석유 주도권을 갖되, 석유 대금 결제는 오직 '달러'오만 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이 합의는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최근 사우디 - 미국 관계가 소원해지며 빈살만 왕세자는 '위안화' 결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https://www.youtube.com/watch?v=LrNiKIuzs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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