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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중동평 9부 - 후기 오스만튀르크 제국(16세기~1922)

Varsika 2023. 4. 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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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으나 막대한 군비로 인하여 재정난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핵심 권력으로 떠오른 예니체리는 술탄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특수신분을 세습하고 관직을 매매하는 등 폐해가 박심했다. 이에 지방의 권력자들은 예니체리와 결탁하여 술탄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자체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1683년부터 1718년까지 오스만 제국은 여러 번 합스부르크제국과 전쟁을 벌였지만 번번히 패하고 말았고,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러시아가 18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빼앗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지중해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합스부르크 왕국 역시 발칸반도를 탈환하기 시작했고, 이 때부터 무슬림 주민들이 기독교도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오늘날 발칸 반도 갈등의 씨앗으로 남게 된다. 

 

무함마드 이븐 아브드 알와하브라는 이슬람 학자는 아라비아반도에서 이슬람 개혁운동을 일으킨다. 그는 예니체리의 횡포를 지적하고 튀르크족의 지배에서 벗어나 진정한 무슬림 세상을 건설하고자 했다. 알와하브는 알사우드 가문과 손을 잡고 군사를 일으켰지만 패배해 실패로 끝난다. 그러나 이 운동은 이후 20세기에 다시 살아나 사우디아라비아가 건국되는 계기가 된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도

 

1798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군대가 이집트를 침공했고 이는 오스만 제국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재위 중이던 셀림 3세(재위기간 1789~1807)는 유럽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오히려 예니체리들에 의하여 1807년 폐위된 후 처형당한다. 

 

이후 헛아비로 옹립된 무스타파 4세는 1년도 못가 다시 예니체리로부터 폐위당하고 1808년 술탄이된 마후므트 2세는 신중한 자세로 힘을 길러 1826년 친위 쿠테타를 일으킨다. 전 제국에서 예니체리들에 대한 대학살극이 벌어지고 역사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후 마흐무트 2세는 제국의 제도를 유럽식으로 고쳐 내각제를 실시하고, 공립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산업과 연구를 장려하였고 유럽식 군복을 도입했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은 오스만의 지배를 받던 발칸반도에도 자유주의 바람을 몰고와 민족주의 운동을 부추겼으며 그리스를 시작으로 1814년 오스만으로부터 해방을 목적으로하는 비밀결사가 조직되었고 1821년 반란을 일으켜 결국 이듬해 그리스는 독립을 선언한다. 1827년 나바리노해전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 독립군이 승리하자 1829년 러시아와의 아드리아노플조약에서 오스만은 그리스의 독립을 인정한다.

 

1517년부터 제국 술탄의 명을 받는 총독이 다스리던 이집트는 유럽의 꾐에 넘어가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당시 총독은 1805년부터 1848년까지 이집트를 왕처럼 다스리던 무함마드 알리 파샤였다. 이후 이집트는 사실상의 독립국으로 20세기 중반까지 그의 자손이 나라를 다스린다. 알리 파샤는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맘루크를 대거 학살하여 군을 장악했다. 

 

크림전쟁의 전황도

 

1853년 오스만 제국와 러시아간의 크림전쟁이 터졌고, 러시아를 견제하던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오스만의 편을 들어 결국 1856년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다. 19세기 말에 이르자 오스만 제국은 서유럽 열강들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이런 와중에 젊은 장교들을 중심으로 청년터키당(통일진보위원회)가 조직되어 군의 지지를 업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들은 독재체제를 추구한 압뒬하미트2세를 페위하고 동생인 메흐메트 5세를 술탄의 자리에 앉혔다. 실세는 청년터키당이었고 술탄은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1914년이 되면 제국의 많은 영토를 잃고 지금의 터키,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아라비아 반도의 일부만 남겨두게 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오스만 제국은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맹해 전쟁에 참여하지만 패전하게 되고 결국 제국의 영토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여러 개로 분할되어 오늘날의 터키 영토만을 간신히 보전받게 된다. 1919년 청년터키당의 장교 무스타파 케말이 정권을 잡게되고 케말은 강력한 의지와 노력으로 외세를 몰아내고 불평등 조약을 폐기해버렸다. 노력 끝에 1923년 10월 29일 앙카라를 수도로 터키 공화국이 수립된다. 아타튀르크라는 이름을 받은 무스타파 케말은 1922년 술탄제를 폐지한데 이어 1924년에 칼리프제도 자체를 폐지함으로써 이슬람 세계 통합의 상징을 제거했다. 

 

 

아나톨리아 내의 외국군을 축출한 터키 독립 전쟁. 현재 터키의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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