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일상/역사

[한국 근현대사] 건국준비위원회와 미군정

Varsika 2023. 10. 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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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건국준비위원회(1945년 8월 17일)

일본의 패망이 유력해질 무렵, 조선에 있던 일본 지도층은 무사히 한국을 빠져나가기 위해 한국의 유력자 여운형과 접촉한다. 여운형은 과도행정기구의 설치를 시도하고 8월 16일 건국치안대를, 8월 17일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한다. 지방에는 지방건준지부가 자생적으로 생겨났는데 이는 후에 인민위원회로 바뀐다.

 

8월 말이 되자 한반도 전체이 145개의 지부가 설치되었다. 지방건준지부는 자발적 특성을 갖고 있었으며 중앙통제가 결여된, 어찌보면 풀뿌리 민주주의에 가까운 성격을 갖고 있었다. 건준 활동에는 여운형 외 다수의 공산주의자가 참여했다. 이들은 단순한 치안유지 목적이 아니라 건국정부 수립 전 잠정적 과도기구를 목적으로 했다. 

 

○ 조선인민공화국 1945년 9월 6일

미군의 남한 진주에 대한 소문이 돌자 9월 초 정부수립을 위하여 여운형, 박헌영, 허헌은 조선인민공화국을 창건한다. 지방의 건준지부는 인민위원회로 바뀐다. 인공의 내각은 다음과 같다.

 

주석: 이승만 / 국무총리: 허헌 / 문교부장: 김성수 / 사법부장: 김병로 / 부주석: 여운형 / 외무부장: 김규식 / 경제부장: 하필원 / 재정부장: 조만식 / 체신부장: 신익희

* 인공은 부일협력자를 포함하여 연립내각을 수립하고자 했다. 

 

이틀 뒤인 9월 8일, 하지 중장이 제 24군단을 이끌고 인천에 상륙한다. 10월 10일 미군정은 인공승인을 거부하고, 조선인민공화국은 정부의 형태가 아닌 정당으로써 조선인민당을 창당한다. 1945년 11월 12일의 일이다.

 

 

○ 미군정 체제

- 일본 체제의 존속: 총독부 기능존속(9.9)

- 일본 관리 공식적 해임, 비공식적 고문

- 일본인 350권 비망록 작성 미군정 제출(1945년 8월부터 10월까지)

- 미군정의 인식: 일본인은 협조적이고 질서를 지키나 한국인은 억세고 다루기 힘들고 시끄럽다.

* 이러한 미군정의 인식은 인공 승인거부로 이어진다. 

 

○ 한국민주당 9월 16일

- 우익, 문화적 민족주의자 중심. 김성수, 송진우, 장택상

- 친일지주적 배경

- 인공과는 다르게 좌익과 협력을 시도하지 않음. 오히려 인공과 이에 관련된 집단 반대에 골몰

- 하지 중장의 개인 통역관이 한민당 지지자 이묘묵이었던 점을 활용함. 10월 9일 한민당은 미군정 행정고문으로 활동하게 됨.

- 미군정은 한민당의 모함으로 인해 여운형을 친일적 공산주의자로 오해하고, 만남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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