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일상/역사

[한국 근현대사] 식민국가와 근대화: 60년대 강성국가론과 근대화 기원론(박정희)

Varsika 2023. 10. 2.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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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시기 구분

1) 1910~1920: 무단통치 / 1919 3.1운동을 계기로 전환

* 농업 위주 정책(~1920년대 말까지)

 

2) 1920~1930: 문화통치 / 1931 만주사변, 1937 중일전쟁을 계기로 전환

* 한국 민족주의 분열의 시작

* 산업화, 공업화 1기

* 문화통치시기부터 산미증식계획(쌀 수탈) 시작

- 지주 자본주의

전라도 고창 김씨 일가(김성수, 김연수) -> 동아일보, 고려대학교, 경성방직 주식회사(자본가의 탄생)

 

3) 1930~1940: 준 전시체제 / 1941 태평양 전쟁을 계기로 전환

* 농공병진정책

* 공업화 2기

- 대륙병참기지화

- 군수공업

-이북지역 공업단지 건설

- 테크노크라트 집단의 탄생(전쟁 특수로 인하여 조선인에게 주어진 새로운 직업)

(ex. 박정희, 말단 행정직)

* 테크노크라트 집단은 이광수와 같은 이데올리기적 친일파와는 구분된다. 

 

4) 1940~1945: 전시체제

* 황민화정책, 민족말살정책, 내선일체

 

 

○ 해방 이후의 박정희

- 남로당 가입 - 여순 반란 사건

* 남로당 사건

: 북조선 노동당 창당에 자극받아 남한 내 공산세력을 부분적으로 통합하였다. 조선공산단 + 남조선 신민당 + 인민당(사회노동당 - 여운형). 박헌영이 위원장을 맡았고 여운형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북조선 노동당은 1946년 8월, 남조선 노동당은 1946년 10월에 찯아하였다. 

- 조선경비사관학교 입교(1949)

 

○ 다중적 정체성

- 자기기술을 가진사람이 식민지인일 때 정체성을 단편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상대가 한국인이라면 다카키 마사오로 보였을 것이고 일본인이 볼 때는 조센징 박정희로 보였을 것이다. 즉 자기 정체성의 결정권이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환경 속에서 식민지 사회에 적응하며 안정적 직업을 얻기 위하여 학력이라는 것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경성제국대학)

 

○ 테크노크라트의 진로

1. 30년대 공업화의 숙련 노동자, 노동자로서의 경험과 의식

2. 군인, 경찰, 말단 관리, 교사로서의 실무행정 경험, 조직화

 

이런 것들이 1960년대 급속한 산업화와 공업화에 기여한 점이 있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관대함이 아닌 전쟁의 급박함이 만들어낸 아이러니이자 조선인들의 능력과 결단력이 합쳐진 결과이다. 

 

이러한 것을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박정희는 기회에 강하며 운명을 개척해야한다는 능동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해방 정국에서 남로당에 가입한 것 역시 해방 이후 좌익이 대세로 자리잡자 출세주의와 욕망에 따라 좌익으로 선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여순 반란 사건 때 체포되었을 때는 남로당 조직에 대한 폭로 등 수사에 협조한 덕분에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기회주의자적인 면모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또한 대구항쟁에 참여했던 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영향도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추후 남로당 내부를 고발한 것을 보면 좌익에 사상적으로 크게 심취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에서 보낸 밀사 황태성(박상희의 친구)을 사형 시킨 것 역시 그가 좌익에 사상적으로 심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론 미국이 당시 박정희의 좌익 경력을 의심했기 때문에 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베트남전 파병 역시 같은 시간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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