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일상/역사

[한국사와 한국문학] 금오신화와 세조대 지식인

Varsika 2023. 12. 12.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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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오신화

- 김시습이 지은 최초의 한문소설

- 과거 소설이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 소설의 copy한 작품이 많았던 것에 반해 배경이 모두 우리나라라는 특징이 있다. 시간적 배경은 고려 말이다. 

* '시습'이라는 이름은 <논어>에 나오는 표현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현실의 모순과 지식인의 답답함을 죽은 여자와의 기이한 사랑이라던지 염라대왕, 용왕과 같은 비현실적인 대상과의 반남을 통해 해소시켰다. 비현실적인 설정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당대의 답답한 현실세계, 혹은 그 현실세계와 자신 사이의 장벽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소설 전반적으로  죽음과 같은 비극적 결말이 많고 비극적 정서가 깊게 베여있다. 김시습 본인의 삶과도 닮아있다고 할 수 있다. 

 

(1) 만복사저포기: 만복사에서 저포놀이를 하다. 

- 노총각과 죽은 여자와의 사랑 이야기

- 전라도 남원 양생이 만복사에서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하다 본인이 지면 부처님을 섬기겠다고 말하고, 만약 본인이 이기면 배필을 맞게 해달라 소원하여 예쁜 여인을 만난다.

- 죽은 여인은 윤회를 거쳐 다른 나라의 남자로 태어난다.

 

(2) 이생규장전: 이생이 담을 엿보다. 

- 총각 이생이 최랑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 차이로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다.

- 부모님을 설득하여 결혼을 승낙 받았으나 홍건적의 난으로 최랑이 죽고 만다.

- 이생은 최랑의 혼령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혼령과 이별 후 병을 얻어 죽는다. 

* 이 작품에서 '담'은 시회적 관심과 신분적 제약 혹은 삶의 유한성을 상징한다. 

 

(3) 취유부벽정기: 부벽정에서 취해서 노닐다. * 부벽정은 평양에 있는 정자다. 

- 개성의 부잣집 아들 홍생이 평양 부젹정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다. 

- 여인은 함께 놀다 하늘로 올라가는데 홍생은 이 여인을 잊지 못해 병을 얻어 죽는다.

 

(4) 남염부주지: 남쪽 염주부 이야기 * 염부주는 염라대왕이 사는 곳을 뜻한다.

- 경주에 사는 박생이 남쪽의 섬나라 염주부에 간 꿈 이야기를 담았다. 

- 작품에서 염라왕을 이상적인 군주로 그린다.

 

(5) 용궁부연록: 용궁의 연회 이야기

- 개성에 살던 한생이 박연(박연폭포의 그곳)에 있는 용왕을 만난 이야기

- 용왕을 만난 후 세상의 명예와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고 명산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춘다.

 

2. 김시습(1435 ~ 1493, 부여 무량사에서 사망)

- 아버지 일성은 충순위를 지냈다.

- 김시습은 어릴적 부터 신동이라 불렸다. 5세 때 세종대왕이 친히 칭찬하고 비단 50필을 하사할 정도로 전국에 소문이자자했다.

- 삼각산 중흥사에서 과거 준비를 하던 중 세조 반정 소식을 듣고 중이 되어 속세를 떠났다. (21세)

- 30대에 경주 남산 금오산에 은둔하며 금오신화를 지었다. (37세까지)

* 금오신화에는 뜻을 이루지 못한 자신이 많이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따. 

- 37세에 서울 성동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살았고, 47세에 환속하여 결혼하였다.

- 벼슬길에 나아갈 생각을 갖기도 하였으나 현실의 모순에 불만을 품고 방랑하였다. 

* 영의정 정창손의 행렬을 보고 소리침(정창손은 계유정난 당시 수양대군 세력에 가담하였고 이후 부귀영화를 누린다.)

- 유교, 불교, 선가를 체득했다.

* 당대에는 유불선에 두르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았다. (이지함 등). 사림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성리학이 강조된 면이 있다. 

- 단종이 복위된 뒤, 사헌부 집의에 추증되었다. (숙종 33년, 1707년)

- 정조 6년인 1782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3. 세조의 찬탈과 반발(계유정난)

- 계유정난(1453):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을 제거하고 정권과 병권을 장악

- 세조의 찬탈(1455): 선위의 형식으로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름

* 세조 시기 훈구세력이 대거 정난공신으로 활약했고, 성종대에는 훈구 세력을 견제할 목적으로 사림을 많이 등용했다. 

 

(1) 사육신

세조 2년(1456)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유성원, 이개(이상 문신), 유응부(무신) 등이 단종 복위를 내세워 세조 제거를 도모하였으나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다. (1457년)

 

* 성삼문은 계유정난 직후 정난공신에 책봉된다. 성삼문이 직접적으로 거사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신 대우를 받은 것에는 2가지 설이 존재한다. 먼저 첫 번째는 초기 수양대군의 의견에 찬동했다는 설이다. 초기에는 수양대군과 뜻을 같이 하였으나, 세조가 즉위한 이후 세조의 측근들에게만 권력이 돌아가자 이에 반발하여 단종 복위운동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설은 당시 수양대군이 잠재적 반대파인 성삼문을 포섭하기 위하여 공신에 책봉하여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려 했다는 추측이다. 

 

(2) 생육신

세조의 찬탈을 의롭지 못한 행위로 단정하고, 불사이군의 원칙에 따라 두문불출하거나 방랑으로 인생을 보낸 사람들을 뜻한다. 김시습, 권절,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3) 금성대군 단종 복위 시도(1457)

- 단종 폐서인, 죽음(1457)

- 숙종 7년인 1681년 노산대군으로 추봉, 이후 숙종 24년인 1698년 단종 복위 결정

* 조광조도 단종을 추증하고 제사를 지내자고 주장하였다. 다른 신하들도 동조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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