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일상/역사

[한국사와 한국문학] 화랑세기와 화랑

Varsika 2023. 12. 2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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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랑세기

- 김대문이 8세기에 저술한 역사서, 원본이 전해지지 않음

- 김대문은 본래 신라 진골 귀족의 자제로 성덕왕 3년인 704년, 한산주도독이 되었고 전기 약간 권을 지었으며 그의 <고승전>, <화랑세기>, <악본>, <한산기>가 아직 남아있다. (<삼국사기> 권 45, 열전 6, 설총). 현대에는 김대문의 저서가 모두 전해지지 않는다. 

 

* <화랑세기>: 화랑의 전기를 모은 것. 

<고승전>: 유명한 승려의 전기를 모은 것

<한산기>: 한산주 지방의 지리지 

 

▷ 화랑도란

화랑도는 화랑과 그를 따르는 낭도로 구성된 집단을 뜻하며, 화랑은 국선, 화판, 선랑, 풍월주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진흥왕 37년인 서기 576년 화랑도에 대한 기록이 처음 발견되며, 처음에는 미녀를 중심으로 원화로 삼아 조직을 구성하였는데 준정과 남모 두 원화가 서로를 질투하여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로써 원화는 해체되고 화랑도가 새로이 구성된다. 훗날 삼국 통일에 큰 역할을 한다. 

 

진흥왕 23년(562)에 장수 이사부를 따라 전공을 세운 사다함(斯多含)을 최초의 화랑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김유신 역시 화랑 출신이다. 

 

2. 화랑세기 필사본

- 발췌본 화랑세기 공개(1989)

상세한 모본 화랑세기 공개(1995)

* 박창화가 필사

 

- 필사본의 내용

(1) 발췌본: 서문에서 화랑의 기원, 풍월주의 기원, 가족관계, 계보(1세 풍월주 위화랑 ~ 15세 풍월주 유신의 행적)

* 1대 위화랑의 이름을 따라 화랑이라 한다고 서문에 밝힘

(2) 모본: 4세 풍월주 ~ 32세 풍월주 행적

 

3. 화랑세기 진위 논란

(1) 필사본 화랑세기는 진서라는 입장

* 발췌본의 완성도가 떨어짐(화랑세기에 대한 박창화의 이해도가 낮음)

* 화랑세기에 보이지 않는 향가(박창화가 지을 수 없을 것)

* 성 인식: 근친혼, 동성에, 다부제- 신라의 개방적인 성 인식

*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내용 일치 - 월서으이 해자, 포석정의 의미

 

(2) 필사본 화랑세기는 위서

* 상식적이지 않은 사회제도 - 마복자 摩腹子 (임신한 상태에서 상관과 동침, 소지왕도 마복자 출신)

→ 마복자란 지위가 더 높은 남성이 이미 임신한 여성을 총애하여 태어난 아이를 자신의 자식으로 삼는 제도다.

→ 권력 분산을 막기 위한 방편이라 설명하기도 하지만 명확하진 않다.  

* 당시에 사용되지 않았던 용어의 사용 - 모계, 풍월주, 전주

* 필사본에만 나오는 인명 - 금석문에서도 찾을 수 없음

* 용춘과 용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동일인 확인

* 김해 김씨 가계가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과 다름

a. 삼국사기: 노동, 무덕, 무력

b. 삼국유사: 세종, 무도, 무득

c. 화랑세기: 무력, 무득

 

- 박창화(1889~1962)

사범학교에서 수학

충북 옥천보통학교 부임

충북 영동공립보통학교

화랑세기 저술(42세)

일본 궁내성 도서요(-寮)에서 조선전고조사 담당 사무촉탁(45세, 1933)

청주사범, 청주중학교, 청주상업학교 강사

괴산공립 초급 여중학교 교사

 

4. 화랑의 역할

- 화랑도를 정식으로 제정(진흥왕)

* 인재 양성 교육기관

- 화랑집단 - 화랑 1명, 승려 1명, 낭도

- 화랑은 진골, 낭도는 경주 6부민 출신 자제

- 청소년(15세 ~ 18세)들이 일정기간(3년) 단체 생활

- 명산대천 순례: 국토에 대한 애착심, 도의 연마(신선의 진도를 구하고자 함, 도교와의 연관성을 뚜렷하지 않음), 지리적 정보습득, 

- 전사 단체

- 신분사회의 알력, 갈등 조절 및 완화: 진골을 비롯하여 하급 귀족, 일반 평민 등 여러 신분으로 구성, 추구하는 공동의 목표가 동일,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

- 9세기 이후 귀족들의 사병적인 성격으로 변화됨

 

5. 필사본에 나타난 화랑의 활동

- 화랑도는 9부(좌삼부, 우삼부, 전삼부)로 나뉘어 일을 담당

- 화랑: 역사, 문장, 향가, 노래, 피리, 춤, 궁마, 검술 등을 배움

- 천하를 주류

- 군사적 활동: 전쟁에 참여, 반란진압, 반란주도(흠돌의 난에 참여), 왕위 폐위에 가담(진지왕 폐위)

* 비담의 난을 평정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지만 반면 김흠돌의 난 때는 주도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 종교적 활동 - 신궁, 사당 및 제상, 불교를 믿음

- 사신으로 활동. 私臣, 왕이 아닌 개인의 신하

- 왕정(공적인 일)에 참여하여 벼슬을 받기도 함.

 

- 30세 낭도는 병부에 속하거나 논공의 일로 돌아감(퇴임), 혹은 향리의 장을 맡음. 대부분의 풍월주와 화랑들은 왕정에 참여하여 관위를 받고 관직을 차지.

 

 

* 화랑도와 불교(p.33, 이종욱)

- 화랑도는 왕과 관련된 조직, 그러나 기본적으로 왕정에 참여하기 전의 집단(평도, 대도는 왕사와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기도 함)

* 낭도는 나이에 따라 동도, 평도, 대도로 구분하였는데 13~14세에는 동도童徒, 18~19세에는 평도平徒, 23~24세에는 대도大徒가 된다. 

- 민족사적 사명(전쟁, 멸사봉공) 이외에도 많은 일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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