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일상/역사

[한국사와 한국문학] 서동설화와 서동요

Varsika 2023. 12. 2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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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類交婚 / 夜來者

 

1. 서동설화

매크는 서동이 서동요를 부름. 소문 떄문에 선화공주가 귀향감.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설화공주와 서동이 결혼을 함. 이들은 금을 엳어서 진평왕에게 보냄. 인심을 얻어서 백제의 왕이 됨. 미륵사를 창건

* 가난하지만 당시 빈민과는 다르게 신분적으로 예속되지는 않음.

* 황금을 얻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경제적 부를 축적한 이로 추측되기도 함.

 

* 서동요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얼어(정을 통해) 두고 

맛동방을

밤에 몰래(알을) 안고 간다.

 

2. 서동은 백제왕

(1) 무왕(600~641) 가설

- 삼국유사의 기록. 무왕은 몰락한 왕족으로 왕위에 오름. 639년 미륵사를 창건

- 미륵사에서 금제사리봉안기 출토(2009), 새택적덕의 딸인 왕비 존재 확인. 서택왕비의 미륵사 건립 발원

→ 선화공주는 무왕 초기 왕비라는 설(실제로 무왕 초기 신라를 공격한 기록은 없음)

 

(2) 무령왕(501~523) 가설

- 일연이 무왕으로 추측 오류

- 무강왕의 康자가 무령왕의 寧자와 의미가 통함

- 무령왕은 익산을 경영함(탐라 정벌 등), 미륵사 창건 기해년(519)

그러나 미륵사 수준의 절을 창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장이 많음

 

(3) 서동은 동성왕(479~501) 가설

- 동성왕은 신라와 혼인 동맹을 함

- 동성왕의 이름 모대牟大, 모도牟都, 말다末多 등이 서동薯童의 우리말 맛둥과 비슷함

- 익산 출토 유물이 웅진 시기 유물과 비슷

- 일본 마나노 장자설 시기(真名野 長者 伝説 , 6세기), 

동성왕이 서동이라면 일본의 마나노 장자설은 5세기 동성왕 서동설화가 6세기 일본에 전파된 것일 수 있음

 

3. 서동설화는 민담의 결합

- 신동국여지승람

"미륵사 용화산에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무강왕이 인심을 얻어  마한국을 세우고, 하루는 선화부인과 더불어 사자사를 행하고자 산 아래 큰 못가에 이르럿는데 세 미륵불이 못 속에서 나왔다"

 

"쌍릉은 고려사에서 후조선 무강왕 및 비의 능이라고 하였다."

→ 신라 백제의 전쟁 종식을 꿈꾸며 서동왕 혼인 민담에 미륵사 창건 전설을 합쳐 만들어진 설화

(선화공주는 불경에 전하는 불교 예화에 보이는 선광善光공주)

 

4. 기타

- 현실담론을 벗어난 적국 공주와의 혼인설화(백제 공주가 등장한다면 바로 현실담론이 되어버림)

- 익산계 친신親臣의 의중 반영?

- 당시 전쟁에 지친 민중의 평화갈망?

 

- 금마저(익산)는 군사적 요충지로 금마저 인근의 거주자들은 신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을 것이다. 어쩌면 서동요는 금마저 사람들이 부른 평화와 희망의 노래일지 모른다. 

 

미륵사 창건 이후 660년, 백제는 멸망한다. 이후 10년 뒤인 670년에는 고구려 유민들이 금마저에 세운 보덕국이 멸망하면서 고구려 유민의 대이동이 시작된다.(금마저에서 경주 남부 지방으로 강제이주). 금마저 주민들은 2번의 망국을 경험하게 된다. 고장의 정체성과 역사를 재해석 하는 과정에서 서동설화의 발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러 이야기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미륵사 창건 연기설화로 이해되었을 수 있다. 이런 특성이 설화의 전승과 보전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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