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일상/역사

[한국사와 한국문학] 도미설화와 개루왕

Varsika 2023. 12. 2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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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미설화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 있음. 내용은 신분이 낮지만 의리가 있으며 아름답고 정절이 높은 도미 부인이 살았는데, 왕이 그녀를 탐하여 계책과 협박을 동원했음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부부는 끝까지 신의를 지켰고 고구려로 망명하여 살았다.

 

2. 도미설황의 배경

 

- 개로왕(455~475) 시대설

(1) 개로왕을 근개루라고도 함

(2) 개루왕(128~166) 시기인 2세기경에는 낙랑군이 존재하여 도미부부의 고구려 망명이 어려웠을 것이다.

* 그러나 해로로 망명을 했을 수도 있다. "...함꼐 배를 타고 고구려 산산 아래에 이르니..."

* 이야기 중 언급되는 지명(산산, 천성)이 모두 바다와 인접한 것으로 보여 해로 탈출의 연관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 두 곳 모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예성강 ~ 파주(교하)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 추측됨

* 그리고 개루왕은 신라에 호전적이긴 하였으나 삼국사기 기록에는 품행이 괜찮은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3) 고구려 첩자 도림의 이야기를 미루어볼 때 개로왕은 아주 무도하고 잔인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 도림에게도 속고, 도미부인에게도 속은 어리석은 왕

(4) 개로왕은 장수왕과 싸우다 전사하였는데, 백성을 돌보지 않고 실정한 국왕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도림과 도미설화를 엮고, 장수왕과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이유만으로 도미설화의 배경이 개로왕이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다소 빈약하고 무리한 해석이다.

 

- 아마 개로왕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설화이며 내용은 허구 일 것이다. 이 주장은 8세기대 김대문이 <한산기>에 수록된 것이다. 실제 개로왕은 강력한 왕권 구축을 시도하였고 제방 축조 정책은 민심을 결집시키기도 하였다. 

 

만약, 2세기 개루왕 시기가 맞다면

기록에 따르면 도미 부인은 비자(婢子-여종)이 있었는데 이를 미루어 보아 사회경제적으로 민의 상층부이면서 호민豪民으로 분화, 발전하는 계층일 수도 있다. 계급 자체는 평민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경제적 지위가 사회적 지위와 꼭 같으리란 보장은 없다. 小經理民에서 富家로 분화하는 단계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2세기 백제 백성의 계층분화를 시사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외교역을 통한 부 축적 - 해로를 통해 도망가는 행위와 연고나성이 있다)

 

3. 삼국사기에 실린 이유

- 김부식의 유교적 사고(열녀 강조)

 

4. 기타

도미전의 개루왕이 백제 본기의 개로왕과 이미지가 비슷해서 전승과정에서 바뀐 계기가 되지 않았나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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