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이야기들/독서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요조 산문, 마음산책)

Varsika 2024. 1. 1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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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감상

 

- 책장을 넘기면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이 책을 사게된 이유였다. 

 

- 제목을 참 잘 짓는다. 에세이 한 편을 다 읽고나면 글의 제목을 다시 찾아보게 된다.

- 작가의 주변 인물들 중에서 박서보와 같이 평소 궁금해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어 신기하고 반가웠다.

- 글의 호흡이 나에게 적합하고, 수사적 표현도 과하지 않지만 희미하지 않아 좋았다. 나중에 글을 쓸 때 옆에 두고 참고하고 싶다. 

 

- 책 말미에 에필로그가 있었으면 했다. 그런데 없어서 몹시 아쉬웠고, 책 머리에 작가가 썼던 글을 다시 한번 읽었다. 

 

- 연말에 읽은 거의 마지막 책이었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기 좋은 책이었다. 나도 글을 쓰고 싶다. 혼잣말을 내뱉게 해주는 좋은 책이었다.

 

 

○ 작가의 말(여러 인터뷰에서 발췌)

 

- 책 제목은 박연준 시인의 시 <음악에 부침>을 읽다. '패배를 사랑하는 건 우리의 직업병'이라는 구절을 읽고 짓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제였으나 제목이 좋다는 반응을 보고 그대로 출판하게 되었다.

 

- 책 표지에 '아주 용감하게 겁이 나'라는 표현은 비유하자면 귀신에 집에 친구들과 함께 들어가는 상황 같은 것이다. 혼자서는 절대 귀신에 집에 들어갈 수 없지만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서워도 들어갈 수 있다. 이 책 또한 독자들에게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 당신의 두려움을 없애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는 것, 함께 있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 한 번의 실패와 영원한 실패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멀리서 보면 과정일 뿐인 실패도 많다. 

 

 

○ 책 속에서

 

- 심보선 시인은 시는 두 번째 사람이 쓰는 거라고 했다.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거라고. 

 

- 대체로 그림에는 입이 있다. 그래서 말한다. 가치관, 세계관, 시선과 꿈, 욕구와 불만을 있는 힘껏 표현한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고 해도 그 없음을 말한다. 자연스럽게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은 경청한다. 어떻게든 작품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보통 작품과 감상자가 맺는 관계일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작품 앞에서는 그 관계가 거꾸로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선 입이 느껴지지 않았다. 말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리는 것 같았다. 감상자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걸 모두 씨앗처럼 받아내 심을 것처럼 작품들은 숭고한 밭고랑의 모습을 하고 잇었다. 그리고 가만히 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서보의 작품에 대하여)

 

- 책을 쓴다는 것은 내 이야기를 취합해서 정리하고 끝나는 어떤 마무리로써의 행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얽혀 들어가며 다시 시작하고 부딪혀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 책을 통해 가자아 강렬하게 체험한 것 같다. (<아무튼, 떡볶이>를 쓰며)

 

- 집주인은 반들반들한 사람들이었다. 두 분의 피부도, 그 집의 마룻바닥도 잘 익은 감귤처럼 선량하게 윤이 났다.(부드럽게, 허벅지가 터지지 않게 中)

 

- 나도 저런 몸이었다. 희노애락에 휘둘리며 하루하루 진지하게 세상에 맞서던 내가 저런 작은 몸속에 있었다. (작았다가 커다래지는 우리들 中)

 

- 나는 내가 묽은 사람인 동시에 아주 미숙한 인격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알기로 인격이 미숙한 사람이 자기 신념에 너무 몰입하여 엄격해지면 자신의 무결함에 도취되기 쉽다. 나는 내가 채식 생활에 진지해질수록 자꾸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자꾸 인스타그램에 삼겹살 사진을 올리는 친구가 야속하고 미워질까봐 겁이났다. 서둘러 치팅 데이를 만드는 것은 그즈음이었다. (...) 동시에 내 신녕믈 자진해서 일부 더럽힘으로써(!) 내가 어쭙잖은 무결함의 도취로 가는 길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미연에 막는다. 

 

- "나는 손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손님도 저를 모르고. 아마 목적지에 도착해서 제가 돈을 받고 손님이 내리고 나면 우리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평생 두 번 다시는 만날 일이 없지 않을까요." (...)

 

그리고 정말 시간이 흘러 나는 제주도민이 되었다. 그 기사분의 예언 같은 바람은 맞아버린 것이다. 제주에서 살면서 택시에 탈 때마다 언제나 빠르게 그를 떠올리고 또 잊는다. 정말로 당신 말대로 내가 이렇게 제주 내려와 살고 있다고, 그에게 신이 나서 알려주고 싶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택시는 좋은 것이다 中)

 

- 만끽이라는 건 언제나 약간 울고 싶은 걸 참으면서 하는 것일까. 그럼 그건 어떤 얼굴일까. 마스크 때문에 보이지 않는 이 공원 속 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근질거리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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