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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과 일상 107

[안동] 도산서원

○ 퇴계 이황과 도산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제170호인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건립한 곳이다. 퇴계 이황은 연산군7년인 1501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출생하여 선조3년(1570년)까지 살았다.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명종16년(1561년) 도선서당을 세웠고 사후 4년만인 1574년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으며 선조는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의 현판을 사액하였다. 197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서원을 보수, 정화하여 성역화 작업을 하였고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충남 예산] 윤봉길의사기념관

○ 윤봉길의사기념관 윤봉길의사기념관은 2001년 개관하였으며 회중시계를 비롯한 여러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 윤봉길 의사(1908~1932) 매헌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의 우의(禹儀)이다. 11세가 되던 1918년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일어난 3.1 운동을 보고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보통학교를 자퇴하였다. 14세 떄 유학자 매곡(梅谷) 성주록(成周錄)의 어치서숙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15세가 되던 해에 결혼하였으나 같은해 오치서숙에서 교육을 모두 수료한다. 스승 성주록은 세상에 나가는 제자 윤봉길에게 성삼문의 호 매죽헌(梅竹軒)을 따서 매헌이라는 호를 수료 선물로 지어주었다. 이후 글을 몰라 아버지의 묘를 찾지 못하는 청년의 일화..

[전북 익산] 익산 백제 왕궁리 유적과 왕궁리유적전시관

○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익산의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공주의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부여의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능산리고분군 등 8개 유적으로 2015년 7월 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왕궁리유적 왕궁리 유적은 1989년부터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에 의하면 백제 말기 왕궁으로 조성되어 일정기간 사용된 후, 그 자리에 사찰이 들어선 복합유적으로 확인되었다. 변화 과정에서 정전 건물은 철거하고 땅을 평평하게 고른 후 탑과 금당, 강당, 승방 등을 조성하였다. 왕궁의 중심축과 사찰의 중심축이 일치하며 사찰로 기능이 변경된 이후에도 왕궁의 담장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 때문에 단순한 사찰이 아닌 왕가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찰임을 짐작케하고 있다..

[자취방/원룸] 깡통전세의 주범, 근생빌라(근린생활시설)

근생(대표적인 사례가 고시원) 입주시, 확정일자와 전입신고가 가능하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근생시설'로써 확정일자와 전입신고가 가능한 것이다. 근린생활시설은 기본적으로 비주거공간으로 허가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취사시설 등을 설치하는 것은 불법개조에 속한다. 따라서 구청에서 원상복구 명령이 나올 경우 임차인(세입자)만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주택으로 사용하는 근생시설에 입주할 경우, 자신이 거주하는 동호수를 명확하게 기재해야 한다. 가령 5층 1개 상가(501호)를 10개 호실(101호 ~ 110호)로 쪼갠 경우, 현관문에 붙어있는 호실 번호가 아니라 등기부등본상 주소인 501호로 전입신고를 해야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호실 번호(가..

[자취방/원룸] 전세 계약시 꼭 넣어야할 특약사항

1. 전세집 구하는 순서 (1) 현재 거주 중인 방 내놓기 : 만약 전세로 거주 중이라면 퇴거 2개월 전에는 내놓는 것이 좋다. (2) 전세자금 대출상품 알아보기 : 현재 이용 중이라면 기간연장 및 목적물 변경에 대해서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신규로 대출상품을 이용할 경우에는 자신에게 적합한 상품을 찾는 것이 필요하고, 요즘은 주로 카카오 전세대출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비대면 서비스가 장점) * 주로 이용하는 대출상품 리스트 A.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 - 대출금리 연 1.8~2.4% - 대출한도 : 보증금의 70%까지(신혼부부 80%까지), 수도권 1.2억원, 기타지역 0.8억원 이내 - 만 19세 이상 ~ 만 34세 이하 - 연소득 5천만원 이하 - 이용기간 : 2년이며 4회 연장이 ..

[자취방/원룸] 다가구 주택 전세계약시 주의할 점

다가구 주택 전세보증 가입 필요서류 ▶소득관련 서류 - 재직증명서 - 전년도 근로원천징수영수증 - 건강보험자격득실 확인서 ▶ 부동산 관련서류 - 전세계약서 원봄 - 거래신고 필증 - 보증금 5% 이상 송금한 계약금 영수증 -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 - 부동산 공제증서(계약한 부동산 발급) - 부동산 등기부 등본(등기사항전부증명서) ▶ 임대인 관련서류(다가구 주택에서 추가되는 부분) - 전입세대 열람 내역서 - 선순위 보증금 확인서 다가구 주택은 다세대와 달라 호수별로 구분 등기 확인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임차인이 다른 세입자의 보증금 규모를 확인할 수 없다. 보증금 규모와 주택 시세의 비교가 어렵기 때문에 건물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후순위자 임차인은 보증금을 받지 못할 위험이 존재한다. 다가구 주택은 집주..

[자취방/원룸] 집주인이 여러 명일 경우 계약하는 법(다가구 주택)

○ 요약 건물 명의자가 복수일 경우, 명의자 모두와 계약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며, 불가능할 경우 지분의 과반만큼의 명의자와 계약해야 한다. 명의자 중 계약에 참석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면 반드시 불참자의 인감 증명서가 첨부된 위임장을 받아야 한다. * 계약 당사자의 신분증을 반드시 확인해야 하며, 불참자의 인감증명서는 당사자가 발급된 것이어야 한다. 1. 명의자가 두 명일 경우(부부일 경우) 부부의 경우 대리권이 인정되어 한 명과 계약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계약 만기시 전세보증금 환급을 계약한 1인에게만 요구할 수 있다. 계약 당시 부부 2명이 모두 동행하였다면, 만기시 2인 중 1인에게 전세보증금 전액 환급을 요구할 수 있다. 2. 명의자가 3명 이상일 때 - 민법 제265조, 공유물 관리에..

[자취방/원룸] 부동산 앱 비교 후기(직방/다방/네이버 부동산)

□ 3사 어플리케이션에서 공통적으로 개선되었으면 하는 부분 (1) 매물 검색지역 설정 : 구, 동 등 지역을 제한하여 검색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혹은 지도에서 원하는 구역을 지도에서 면적 그리듯 설정하여 해당 구역 내의 매물만 선별하여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불필요한 매물은 노출 자체가 노이즈다. (2) '이 매물 숨기기', 혹은 '다시 보지 않기'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가격이나 위치가 기준에 적합해도 옵션 유무 등 기타 사항으로 굳이 볼 필요없는 매물도 많다. 두 번, 세 번 뒤적거리는 수고가 없었으면 좋겠다. (3) 거래완료 매물도 다시 열람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격, 옵션, 위치, 건물의 연식 등은 두고두고 참고하면 좋다. 만약 매물을 올린 집주인이나 부동산에서 매물열람을 취소한다면 '이 매물정..

[충북 보은] 신라의 꿈, 난공불락의 삼년산성 (2부)

- 난공불락의 삼년산성 삼년산성이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삼년산군이었던 고간 도도의 활약이나 인근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투 때문만이 아니다. 진정 삼년산성이 유명세를 탄 이유는 바로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 한번도 함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150전 149승 1패라고도 말하는데 정확한 통계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기록에 따르면 통일신라 시기 김헌창의 난 당시 반란군이 삼년산성에서 농성을 벌이다 토벌된 적을 제외하고는 함락된 기록이 없다고 한다. 이는 내란 규모의 전투였으니 국가간 전투에서는 함락된 적이 없는 셈이다. 축성 이후 삼국통일이 이루어진 7세기 후반까지 200년 동안 신라의 성으로 남았다. 후삼국 시대에는 후백제 견훤의 세력권에 포함되었는데 왕건이 친히 공략하였으나 실패해 돌아갔다..

[충북 보은] 신라의 꿈, 난공불락의 삼년산성 (1부)

- 기록 속의 삼년산성 충북 보은에 위치한 삼년산성은 5세기 후반(470년) 신라가 쌓은 석축식 산성으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성을 쌓는데 3년이 걸렸기에 삼년산성으로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향산성으로 기억되어 있고, 다른 역사서에는 산의 이름을 딴 오정산성으로 전해진다. 삼년산성은 삼국사기에 유일하게 축성시기와 과정이 기록된 산성이다. 이를 통해 삼년산성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5세기 초까지만해도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발전이 늦었다. 광개토대왕 시기 고구려 원군의 도움을 받은 이래로 신라 영토에 고구려군이 주둔하고, 고구려 장수가 신라의 벼슬을 받을 정도로 종속된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신라는 김씨 세습 안정화 등을 통해 자주국가로 발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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