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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역사 - 알폰소13세 퇴위 이후

파시즘의 등장 1932년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독재 정치를 시작하고,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다. 이탈리아 에서는 이미 1922년 무솔리니, 스탈린(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 선홍)이 집권하였는데 이른바 파시스트으 ㅣ시대가 온 것이다. 이들은 공산주의, 자본주의오 ㅏ함꼐 또다른 하나의 세력을 구측했다. 파시즘이란 묶음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파쇼(Fascio)에서 나온 말로 민족과 국가를 낲세운 권위주의적 전체주의를 뜻한다. 대부ㅜㅂㄴ의 파시즘은 군대를 앞세운 독재라 군국주의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계급 투쟁을 일으키는 이유가 자본주의 혹은 공산주의에 있다고 보고 두가지 모두를 배척한다. 스페인 내전은 이러한 역사적 매경 속에서 내부의 보수대 진보, 왕당파 대 광화파, 나아키스트와 바스크, 카탈루냐의 분..

카테고리 없음 2023.05.11

스페인 내전(카를로스 전쟁)과 스페인의 몰락

프랑스의 개입으로 1823년 왕권을 되찾은 페르난도 7세는 아들이 없었다. 네 명의 왕비를 두었으나 아들을 얻지 못했다. 스페인은 여성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는 살리카 법을 따르고 있었는데 이에 따르면 페르난도 7세의 동생인 카를로스 대공에서 왕위가 돌아가야 했다. 페르난도 7세는 1830년 일방적으로 살리카 법을 폐지했고, 법을 폐지하고 6개월 뒤 네 번째 왕비로부터 이사벨 공주가 태어난다. 3년 뒤인 1883년, 페르난도 7세가 세상을 떠나자 3세의 공주가 이사벨 2세로 즉위한다. 카를로스 대공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카를로스 5세로 칭했고 섭정 중이던 모두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이를 반역으로 선포해 7년에 걸친 카를로스 전쟁이 발발한다. 보수적인 왕당파와 귀족, 성직자들은 카를로스를 지지했고 ..

카테고리 없음 2023.05.10

먼나라 이웃 나라 스페인 - 남미 식민지의 독립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남미 북부 지방의 독립운동을 주도 했다. 카라카스(베네수엘라의 수도)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며 21세가 되던 1804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나폴레옹에 큰 충격을 받았고, 고향에 돌아와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다. 진보적 사상가 시몬 로드리게스의 영향을 받이 받았고 훗날 로드리게스를 국가의 스승으로 기리기도 했다. 유럽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 미국을 방문하였는데 여기서 연방 국가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되고 귀국 후 독립운동 세력을 연합해 스페인군과 싸워 이겼다. 1811년 베네수엘라 공화국을 건국하였으나 왕당파의 반격에 카르타헤나(지금의 볼리비아 항구도시)로 망명한다. 이곳에서 카타르헤나 선언을 통해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독립을 선포하고 다시 독립 전..

카테고리 없음 2023.05.10

먼나라 이웃나라 - 스페인(나폴레옹의 침략과 스페인 독립전쟁)

1516년부터 1700년까지 184년간 합스부르크 왕가가 스페인을 통치했다. (카를로스 1세부터 카를로스 2세까지 5명) 이후 펠리페 5세부터 현재의 펠리페 6세까지 총 12명의 왕이 부르봉 왕가에서 나왔다. 스페인은 펠리페 5세가 즉위한 1700년부터 나폴레옹이 몰락하는 1814년까지 프랑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터지자 스페인 왕실은 공포에 휩쌓인다. 특히 1793년 루이 16세가 처형 당하자 스페인은 영국 등과 손을 잡고 대 프랑스 동맹(제1차 1793~1797)을 맺고 전쟁에 참여한다. 그러나 1799년에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고 1806년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킨다. 그는 1804년에 프랑스 황제로 즉위한 이후 거이 모든 반프랑스 세력을 굴복시킨다. 스페인 역시 나폴..

카테고리 없음 2023.05.10

먼나라 이웃나라 스페인 - 저물어 가는 제국(네덜란드 독립~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 왕이 된 뒤에도 네덜란드인을 측근에두고 네덜란드어로 정치를 했다. 네덜란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인들은 카를 로스 1세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비록 높은 세금이 부담되었지만 같은 네덜란드인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 펠리페 2세는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네덜란드인을 경멸했다. 가톨릭을 믿지 않고 장사에만 몰두하는 개신교도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여러 차례 펠리페2세에게 개신교 허용과 세금부담의 경감을 요청했지만 필리페 2세는 오히려 탄압으로 대응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가톨릭의 탄압을 피해 도망쳐온 신교도들, 자유주의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스페인의 종교탄압이 심해지자 네덜란드 개신교도들은 1566년 교회를 습격하여 성..

카테고리 없음 2023.05.10

먼나라 이웃나라 - 스페인의 신대륙 정복

콩키스타도레스(Los Conquistadores, 정복자들) : 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하고자 모험에 나선 정복자들로 이들은 대부분 하급 귀족 이달고(Hidalgo) 계급이었다. 이들은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는 확률이 희박하고 작은 지주에 그쳐야 했기 떄문에 자유와 성공을 위해 신대륙 정복의 길을 떠났다. 이달고란 '이호 데 알고'에서 비롯된 말로 본래 뜻은 '소유가 있는 집안의 자손'이란 뜻이었는데 정통 귀족은 아니어도 군인 출신으로 공을 세우거나, 훗날 돈으로 귀족 계급에 오른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름 앞에 돈Don이나 도냐Dona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었다. 족보상 하급 귀족이었던 이달고 데 상그레(Sangre)와 공을 세우거나 돈으로 계급을 산 이달고 데 프리빌레지오(previlegio)로 나..

카테고리 없음 2023.05.10

먼나라 이웃나라 - 스페인과 가톨릭(펠리페 2세)

가톨릭은 스ㅔ인이 800년가까이 외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스페인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스페인의 군주이자 신성로마제국 오스트리아 황제인 카를로스 1세는 평생 가톨릭을 지키고 전파하며 저항 세력과 싸우는데 일생을 바쳤다. 이런 스페인은 종교개혁과 개신교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엇다. 종교 개혁에 대항해 가톨릭을 지키고자 반종교개혁이 일어났고 가톨릭의 체질을 강화하고자 하엿는데 1540년 설립된 예수회가 대표적이다. 예수회를 세운 이냐시오 로욜라는 스페인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따. 1539년 서립된ㄴ 예수회는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에게 정식 가톨릭 교단으로 인가 받았다. 해외 선교에 가장 전투적인 교단으로 가톨릭을 주국에 전한 마테오 리치, 일본에 전한 프..

카테고리 없음 2023.05.09

먼나라 이웃나라 -스페인(레콩키스타 이후~펠리페 1세까지)

스페인은 레콩키스타 완수 이후 정치적 세력을 넓히기 위해 정략결혼을 진행한다. 포르투갈, 영국 등과 결혼을 진행했고 한편 오스트리아 지방에서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떠오르고 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현재 스위스의 슈바벤 지방에 있는 하비히츠부르크에서 유래했다. 하비히트(habicht)는 매라는 뜻으로 하비히츠부르크는 '매의 성'이라는 뜻이다. 합스부르크 왕가 문장애 매가 들어가는 것오 이때문이다. 합스부르크 가문 역시 프랑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왕실과 혼맥을 맺기 시작한다. (강대국 프랑스를 제외하려는 전략) 13세기 루돌프 1세에 이르러서는 중동부 유럽을 아우르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다. (도이치황제 겸 오스트리아 황제) 실질적으로 프랑스 동쪽을 지배한 최강자였다. 후아나 1504년 카스티야 왕국의 여..

카테고리 없음 2023.05.09

먼나라 이웃나라 - 스리랑카(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

스리랑카 국기는 사자가 그러져 있는데 이는 건국설화와 관련있다. 기원전 5세기 경, 인도 벵골 지방의 위자야 왕자가 이 섬으로 건너와 사자의 도움으로 나라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스리랑카 인구의 75%는 싱할라족인데, '싱할라'라는 이름이 바로 '사자의 후예(SInha 사자 + La)'라는 뜻이다. 시크교도를 칭할 때 붙는 '싱', 싱가로프르의 '싱'역시 모두 사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싱할라족은 스리랑카 섬을 '랑카디파'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랑카'가 사자, '디파'가 섬이라는 뜻이다. (사자의 섬) 독립 후인 1972년 헌법을 바꿔 국호를 스리랑카로 정했는데 여기스 '스리'는 영광, '랑카'는 사자를 뜻하며 영광스러운 사자의 나라라는 뜻을 갖고 있다. 스리랑카는 기원전 247년 인도로부터 초기 불교를 ..

카테고리 없음 2023.05.09

먼나라 이웃나라 - 부탄

네팔과 부탄은 불과 20km 떨어져 있으며, 두 곳 모두 인도와 티베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네팔과 부탄은 서로 많은 차이점을 갖고 있다. 먼저 네팔은 '네팔리'라고 불리는 언어와 인도의 문자 데바나가리를 쓰지만 부탄은 '종카어'라는 고유의 언어와 티베트 문자를 쓰고 있다. 네팔어는 인도말과 뿌리가 같은 인도-유럽어종이지만 네팔의 종카어는 티베트-버마어 계통이다. 종카어는 부탄의 상류층 언어로 인구의 왕실을 포함한 인구의 20% 정도가 사용한다. 종교적으로 네팔은 국민의 81%가 힌두교도인 힌두교 국가, 부탄은 75%가 불교 신도인 불교 국가이다. '부탄'이라는 국호는 '용의 나라'라는 뜻인데 국기에 용이 그러져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국기에는 발톱이 3개인 용이 그러져 있는데, 이는 중국의 천자만이 ..

카테고리 없음 20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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