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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이야기들 92

답신(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中)

양경언 평론가는 해설에서'짐작하건대 을 읽고 고통스럽지 않다고 느낄 독자는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나도 정확히 그런 마음이었다. 소설은 구조적 취약성 속에서 다른 삶보다 외부의 충격에 더 크게 상처받기 쉬운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이들에게 책임을 철저하게 여성 개인의 몫으로 내던지는 상황을 문제시 한다. 이 여성 인물들이 어떤 맥락에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남들이 보기엔 자기 자신을 지키지 않는방향으로 스스로 내모는 결정일지언정 그들을 둘러싼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함부로 그들의 사연을 '개인 사정'이라며 외면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내세우는 것이다.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리뷰, 해설, 작가의 말)

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다가왔지만 이 책은 뭔가 다 읽고나서도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모든 이야기에 담겨있다. 그 부분이 좋기도 했지만 를 읽고 기대한 것과는 달라 처음엔 시간이 필요했다. 느낌으로 다가온 이야기는 와 , 그리고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아무리 봐도 최은영 작가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실과 갈등, 회복과 치유에 대해서 혹은 상대방이 영원히 상실된 이후에 남겨진 이가 그 관계, 시간과 스스로 화해하는 과정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상대방이 상실된 후에 남겨진 이들이 그 시간과 어떻게 화해하는지 조명하는 것은 읽을 때마다 늘 고마움이 든다. 그 이야기 자체가 어린 시절 자신에 대한 애도이자 위로이고 현재의 자신에게 건네는 최선의 응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 자체가 아..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中)

어릴 적 식모로 일했던 기남이 홍콩에서 만난 가사노동자들을 마주하는 장면은 단순하지만 훌륭한 구조였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다 읽고나면 그 장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는 시간과 기억은 사라져도 위로받은 마음, 위로를 준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남은 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시간이 갈수록 기남은 권사장에게 깊은 분노를 느꼈고,그 분노는 기남에게 약이 되었다. - 기남의 마음에는 사라지지 않는 방들이 있었다. 언제든 그 문을 열면 기남은그 순간을 느끼 ㄹ수 있었다. 그날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생생했다. 그 중식당의 냄새, 식기의 모양, 음식의 종류, 노인 옆에 있던 젊은 남자, 그러니까 노인의 아들이 입었던 옷과 큰언니라는 사람의 표정까지도. 기남..

이모에게(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中)

이미상 작가의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이 생각났다. 세대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오해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사랑과 그리움의 증폭을 가져오기도 하는구나, 시간은 감정을 휘발시키기도 하지만 숙성시키기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 "그때야 다 그랬다지만..... 다 그랬던 건 아니야." - 돌아보면 그 시절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나의 공포와 분노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기 위해 나는 쉽게 겁내지 않고, 사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연출했다. - 나는 부대로 돌아와 이모의 코트와 목도리를 소각장에 넣고 휘발유를 부었다. 검은 연기가 치솟는 동안 나는 내가 그곳에서 소리 없이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 옛날 사람들은 하늘 위에 하늘나라가 있다고 생각했다. 밤하늘의 별빛들을 보고 ..

2023년 8월에 들은 음악들

https://www.youtube.com/watch?v=SwDr3ty8Cwg 1. Retrouvailles - Elie Abou Nasr https://www.youtube.com/watch?v=aAuTVjTBLjc 2. 김사월 -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 https://www.youtube.com/watch?v=R8axRrFIsFI 3. 백아 - 테두리 https://www.youtube.com/watch?v=VHj6IYA-Dxs 4. 데이먼스 이어 - yours https://www.youtube.com/watch?v=LZgcTTXZ9Ls 5. 시이나 링고 - 가부키쵸의 여왕 https://www.youtube.com/watch?v=UFQEttrn6CQ 6...

일 년(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中)

-- -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웃으며 사무실을 나왔지만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싶지 않았다. - 저는 다희씨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조금은 좋아하게 됐어요.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에요. - 다희가 더 깊은 이야기를 할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는 말도.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애초에 그녀는 깊은 이야기를 할수록 서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믿..

몫(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中)

해진 : 주인공, 소설의 독백은 해진을 '당신'이라고 부른다. 편집부 일을 하며 그곳을 떠나고 싶어 했지만 학기가 바뀌어 희영, 정윤, 용욱이 편집부를 떠났을 때에도 해진은 편집부에 남는다. 글을 읽는 기쁨이 편집부 생활이 주는 고통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해진은 결국 기자가 된다. 정윤: 대학시절 세미나의 간사. 정윤은 같은 편집부에서 만난 용욱과 결혼했고 그의 유학을 위해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희영 : 편집부의 희영은 여성인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용욱을 비롯한 대부분의 운동권 지도부들은 구조적인 모순과 거시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 여성인권에 대한 희영의 진심도 그저 '배부른 소리'로 취급받는다. 희영이 좋아하던 정윤조차 희영에게 몸을 팔아야 할 만큼 가난해본 적도 없으면서 같은 여자라고 기지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中)

은행을 다니다 20대 후반에 대학을 다니게 된 희원. 희원은 수업을 듣다 여자 강사인 '그녀'에게 도움을 받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둘은 가까워진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희원은 그녀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녀는 '공부는 대학원이 아니라도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희원은 이것을 자신의 능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라 받아들이고는 상처받는다. 희원 역시 그녀에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만한 말을 내뱉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둘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이후 희원은 오랜 시간 그녀를 만날 수 없게 된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 희원은 종종 그녀를 떠올리고 스스로와 그녀를 비교해보며 그녀가 예전에 겪었을 순간과 감정들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말..

당신에게 말을 건다 -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김영건)

올 봄, 동아서점을 방문해서 구매했던 책이다. 작가 김영건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속초 동아서점을 지키고 있다. 작년 여름 그곳을 찾아 김영건 작가의 다른 에세이인 를 사서 읽었다. 그 기억이 좋아 이번에도 독립서점을 찾아, 그곳에서 나온 책을 샀다. 시간상으로는 가 더 먼저 나온 책이다. 아무래도 경험에 의한 영향인지 문장을 읽는 재미는 두 번째 책이 더 좋았다. 다만 는 문장을 읽는 재미보다는 처음 서점을 맡게 되면서 고민하는 작가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세 번째 에세이도 기대된다. 매년 속초 동아서점을 찾고 싶다. - - 책의 위치는 매입 시점에 단 한번 정해지지만, 실제 책의 자리는 처음 정해진 위치로부터 하염없이 미끄러진다. 이러한 이유로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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